2021. 5. 31. 19:24ㆍ나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김은유
생일 파티 가야지
내가 태어나자 탄생을 축하하러 모인 자들이 숲에 불을 질렀다 촛불이 없었으므로, 침엽수는 자꾸만 뜨거워졌다 숲은 하나의 거대한 케이크 축하해, 축하해 하얀색 고깔 모자를 쓰고 나는 피 흘리는 태양을 보았다 박수를 치던 사람들이 겨드랑이를 벌려 털장갑을 만들어주었다
이름이 잘못 적힌 생일 카드를 받고 울었지 나는 버스를 타고 숲을 달아났다 제일 먼저 배운 건 객석을 무너뜨리는 방식 이정표는 부서졌고 버스는 지도에 없는 곳을 향해 달렸다 나는 날아다니는 새의 날개를 찢어 창문 밖으로 던졌다 매일 매일 죽어가는 새를 잘못된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주인공이 필요한 생일날 화려한 중절모를 쓰고 파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혼자 케이크를 먹고 촛불을 불었다 난로 속 장작처럼 날개가 타들어갔다 나는 따뜻한 가슴을 떼어내어 천장에 던지는 놀이를 했다 찰싹 찰싹 빵 반죽처럼 연약하게 달라붙는 나의 가슴들 버스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사람은 원래 버스에서 태어난 거야 옷을 벗다 말고 창밖을 보면 황홀해졌다
생일 파티 가야지 오늘은 내 생일인데 창밖으로 소방차가 지나갔다 산불이 난 검은 숲 검은 몸 날개가 잘린 새들은 폭죽을 물고 돌아왔다 버스는 목적지를 바꾸고 연기가 자욱한 숲으로 나를 데려갔다 축하해 축하해, 아무렇지 않게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 나는 선물 상자에 침을 뱉었다 축하받고 싶은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발견되었다
지정석
의자는 지구 끝으로 간다
차지하기 위해 주먹에 힘을 주고 걷는다
빈틈없는 밤의 가장자리에
손을 찔러 넣을 수 있도록 악력을 키워둬
그렇게 말하던 엄마는 뭐든지 직접 빨았다
고무 대야에 하얗게 말라붙은 얼굴
앞집 남자의 멱살을 잡던 손으로
하수구 속 머리카락을 골라냈다
풍경을 밀어내며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세계
같은 극의 자석을 이어붙이는 것처럼
골몰했다
쪼그려 있다가 결국 주저앉고 마는,
화장실 타일만이 알고 있는 엉치뼈의 단단함
믿어 온 것보다 훨씬
헐거운 것이라면
욕실 천장까지
주인을 모르는 속옷이 쌓여 있었다
세게 문지르다 보면 어두워졌다
내일만큼 헐거워진 엄마의 손가락
공원을 옆구리에 끼고 걸으며
비어 있는 벤치를 찾았다
앉을 수 있지만 오래 머무를수록 불안한
작은 짐이 하나씩 놓여있는 자리
빛이 드는 순간에 모여들었다가
저녁이 되면 사라지는 공원의 여자들은
무언갈 쥐기 위해 가는 것이다
폐기 직전 물건들로 채워진
슈퍼마켓의 가판대를
악착같이 품속에 달라붙는
어린아이의 손아귀를
발 딛는 순서를 순간적으로 잊어버리는 듯이
의식하게 되는 일
이미 겪어본 것 같았다
걸을 때마다 꼭 쥐고 있던 주먹을
천천히 내려놓고 싶은 순간
빈 의자를 내버려 두고
공원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우레탄 폼에서도 자라는 식물의 이야기
집으로 돌아와서 들려주는 말에는
신비감이 없고
빛나는 티브이 앞에 붙어 앉은 엄마가
번쩍번쩍 박수를 치고 있다
하나씩 펼쳐진 손아귀는
꼭 사람의 목을 감싸기 좋은 모양새
드라마 속 여자들이 티브이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치열하게
두번째 작품 ▶ 정세하, 나나의 사탕 / 석류 속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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